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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던 고슴도치가 무지개 다릴 건넜습니다.

by 계피생강 2019. 6. 20.

떠나기전 마지막 식사였습니다 ㅠ

2년 반정도 키웠습니다.

보통 4~5년 사는 것에 비하면 제 고슴도치는 제명에 못 살고 떠났지요.

작고 약한 생명이였습니다.

 

죽기 몇 달 전 가시가 계속 빠졌습니다.

처음엔 가시 갈이 인가 싶었지만 정도가 너무나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병원에 데려갔지요. 고슴도치 진료 보는 곳이 별로 없네요.

가시가 너무도 많이 빠졌습니다.

의사 선생님 진료 결과 가시와 피부에 진드기가 상당히 있다 합니다.

어떤 동물이든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니 치료하면 되는 문제라고 하네요.

허나 더 우려되는 건 이 고슴도치가 왜소증이 의심된다고 합니다. 선천적으로 약한 개체라는 것이죠.

 

다 큰 고슴도치에 비해 크기와 무게가 3분의 2정도 밖에 안된다고 하더군요. 고슴도치라곤 이 한마리뿐이 안 키워봤으니 큰 건지 작은 건지도 몰랐습니다. 병원 가서 처음 알았네요.

 

뿐만 아니라 이빨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 건너 하나가 빠져있고 치석도 많이 껴있다고 합니다.

 

일단 진드기 제거하는 약을 고슴도치 몸에 한 방울 떨어뜨리고 약을 처방받아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약을 먹이에 섞어서 먹여주었고요.

 

2주 뒤에 다시 내원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딱 그때였죠. 2주 뒤에 고슴도치가 떠나버린 것이...

내원하라는 병원의 문자는 내려버린 채 아무런 반응도 없는 고슴도치 옆에서 설마설마하면서 그저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렇게 떠나버린 고슴도치와 함께 물품도 같이 정리했습니다.

 

밤만 되면 후다닥 나와서 쳇바퀴 타고 밀웜 먹던 소리가 어느새 익숙해져 있던 탓인지 요즘은 밤에 너무도 조용한 것이 더 고슴도치가 생각나게 되네요.

 

짧은 생이었지만 고슴도치에게도 행복한 순간이 많았었길 바랍니다.

 

 

조금 더 철학적인 생각으로 나아가 보면 한 가지 물음이 떠오릅니다.

결국 떠날 작고 약한 생명은 어찌 그리 죽기 직전까지 밥을 먹고살고자 했을까요. 자신이 죽을 건지 몰랐을까요. 아니 어쩌면 최후의 만찬 자체를 즐기려 했을지도 모르죠. 비단 고슴도치뿐만일까요? 우리의 삶은 이와 크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퍽퍽한 사회 속에 나 자신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고된 일 마다하지 않고 일하는 우리의 모습은 당연한 걸까요? 분명 우리 삶도 영원하지 않을 텐데 말이죠. 멀리 떨어져 있는 행복을 구경만 할 순 없습니다. 지금 한시라도 젊고 건강할 때에 우리는 매 순간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고슴도치는 그렇게 저에게 많은 생각과 고민을 남겨주고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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